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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방향 자기저항과 테라헤르츠 마그논

(Possible) Contribution of THz magnon in unidirectional magnetoresistance


2019년 4월 19일.


드디어 APEX(Applied Physics Express)에서 억셉트 메일을 받았다.


그리 임펙트가 높은 저널이 아니고, 그러기에 이 저널에 논문을 출간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나의 연구 커리어에 APEX보다 좋은 논문도 많고, 사실 APEX에도 수 많은 논문을 출간했었다. 그런데 오늘 나는 참으로 감동적이고 뭔가 가슴 한 켠에 아련함마저 느껴진다. 지난 7년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때는 2012년 9월 14일이었다.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내 실험 데이터에는 날짜가 기록된다 (그러니 이 것은 사실이다). 당시에 나는 Domain wall (DW) 실험을 열심히 하고 있었고, 그 즈음에는 ‘금속에서의 스핀홀 효과’라는 현상이 막 등장하던 시기였다. 스핀홀 효과라는 것은 전자가 이동할 때 그 스핀 방향에 따라 한쪽방향으로 휘는 현상이다. 야구공을 던지면서 스핀을 주면 휘는 것처럼, 전자가 스핀을 가지고 있으니 진행하다가 한 방향으로 휘는 것이다. 예를 들면, up-spin은 앞으로 가면서 왼쪽으로 휘고, down-spin은 앞으로 가면서 오른쪽으로 휘는… 그런 식이다 [그림1 참조].


그림 1. 스핀 홀 현상의 개략도

이런 스핀 홀 현상은 스핀-궤도 상호작용에 기인하므로, 스핀-궤도 상호작용이 강한 물질에서 일반적으로 강해진다. 스핀-궤도 상호작용은 원자핵과 전자 사이에 작용하는 힘에 기인하므로, 원자핵의 양성자가 많아질수록, 즉 원자번호가 클수록 일반적으로 커진다 (따라서 중금속에서 강하다). 일반적으로 Pt, Ta, W등에서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특히 Pt과 Ta, W은 그 부호가 반대가 된다 (부호가 반대가 된다는 것은 Pt에서 up-spin이 앞으로 진행하다 오른쪽으로 휜다면, Ta에서는 앞으로 진행하다 왼쪽으로 휜다는 이야기다). 지금은 당연한 것 같은 이런 현상이 10년전에는 아무도 모르는 현상이었다. 당시에는 Pt/Co와 같은 물질을 만들어 전류를 흘려 자화스위칭이나 DW이동과 같은 실험을 했었는데, 모두가 Co만 신경을 썼지 Pt은 신경을 쓰지 않았다 (Pt은 단지 Co의 자화를 수직방향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층이라 생각했고, 전류를 흘리면 Co가 아닌 Pt쪽으로도 흐르므로, “쓸데없이 전류를 잡아먹지만, 어쩔 수 없이 써야 하는” 물질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2000년대 후반으로 오면서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현상이 발견되고 (예를 들면 DW의 이동방향이 기존 이론 예측과 반대가 된다던가, 자화 스위칭이 in-plane자기장에 영향을 받는다든가…) 사람들이 스핀홀 현상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2011년경 3가지 획기적인 실험결과가 발표가 되었는데, 그 결과는 모두 Pt이나 Ta의 스핀홀 현상이 아주 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Miron과 Liu는 전류를 흘려서 자화 스위칭 실험을 하였고, 그 결과 Pt이나 Ta에 흐르는 전류에 의해서 Co가 스위칭된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참고문헌 1,2]. Haazen은 in-plane 자기장을 주면서 전류를 흘려 DW을 이동시키는 실험을 하였는데, 그 결과 역시 Pt의 스핀홀 효과에 의해 DW이 이동한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참고문헌 3]. 이 말은Pt에서 스핀홀 현상이 발생해서 Pt과 Co의 계면에 한 방향 스핀이 모이고, 이것이 Co로 들어가면서 Co의 자화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지금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이런 스핀홀 현상이 당시에는 막 등장하던 때였고, Rashba effect, DMI와 같은 계면 현상 역시 막 등장하던 때였다. 따라서 할 일이 많던 시기(?) 였기도 하다.


당시 내 질문은 이 것이었다. Pt/NiFe로 샘플을 만들면, Pt의 스핀 홀 효과가 NiFe에 어떤 영향을 줄까? 생각해보면 그리 대단한 질문은 아니었다. Pt/Co를 사람들이 하니까, 나는 그냥 물질을 Co에서 NiFe으로 조금 바꾸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NiFe과 Co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이, NiFe은 수평자기이방성(in-plane magnetic anisotropy)을 가지고, Co는 수직자기이방성(perpendicular magnetic anisotropy)을 가진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Co는 위, 아래 방향으로 정렬하지만, NiFe은 좌,우 방향으로 정렬한다는 것이다. 내가 가장 잘 하는 것은 DW을 측정하는 것이니, NiFe에 DW을 만들고 전류를 흘리면, Pt의 스핀홀 효과가 DW의 움직임에 무슨 영향을 주지 않을까? 이걸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림 2. 수평자기이방성 시료에서 DW실험을 하기 위한 곡선 구조 개략도와 실제 제작된 시료

그래서 그림 2와 같이 샘플을 만들었다. 이 샘플에다가 45도 방향으로 자기장을 걸게 되면 곡선 부분에 DW이 형성되는데, 전류나 자기장을 주면 곡선에서 빠져나가게 될 것이다. 만일 스핀홀 현상이 있다면, 전류 방향에 의존하는 어떤 현상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왜냐하면, 전류 방향을 바꾸면 스핀홀 현상에 의해서 발생하는 스핀의 방향이 반대가 될 테니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 나는 전류 바이어스를 주면서 자기장에 의한 DW depinning 을 측정하고자 하였다.


언뜻 보기에 참으로 단순한 실험이다. 하지만 사실 이 실험을 시작하기까지는 많은 노하우가 필요하다. 모르는 사람이라면, “샘플 만들고-probe tip을 대고-전류 흘려가면서 자기장 걸고- 그냥 depinning 측정하면 끝!” 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걸 하는 데는 엄청나게 많은 노력을 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자세히 체크하지 않으면 결과가 왜곡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샘플이 제대로 만들어졌는지 확인은 어떻게 하지? Probe-tip을 가져갈 때 나오는 Noise는 어떻게 해결하지? 전류를 흘리면 온도도 올라갈 텐데, 그 효과를 어떻게 없앨까? 자기장의 크기와 방향이 정말로 정확한가? Depinning이 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아낼까? 등등 생각해야 할 것이 많다. 머릿속에서 생각하던 것을 실제로 구현하려면 엄청난 내공이 필요하다. 나는 이런 부분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당시에는 이 자부심이 대단히 높아서, ‘내가 측정을 하면 나의 데이터에는 오류가 절대 없다’라고 확신을 하던 시기였다. 여담이지만, ‘이 사람의 데이터는 믿을 수 있어’라는 신뢰를 주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고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나는 학위 과정 중에 그런 과정을 거쳤고(아니 거쳤다고 믿고 있고), 그래서 그 정도의 확신은 있었다. “내가 해석을 잘못할 수는 있지만, 내 데이터에는 오류가 있을 수 없다”


샘플을 조심스럽게 만들었고, 아주 조심히 측정에 돌입했다. 가장 먼저 할 것은 probe tip이 정상인지 확인하는 작업이고, 자기장과 전류가 정상적으로 걸리는지, 샘플이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는 순서였다. 이 작업만 몇 일에 거쳐서 수행하였다. 그러던 중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기본적으로 NiFe이라는 샘플은 이방성 자기저항(Anisotropic Magnetoresistance) 이라는 저항이 나와야 한다. 이것이 뭐냐하면, 전류의 방향과 자화의 방향이 평행할 때가 수직일 때보다 저항이 높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류를 x방향으로 흘리고 자기장을 Y방향으로 주면, 그림3과 같은 저항을 얻게 된다 (자기장을 걸지 않게 되면 자화가 x방향으로 향해서 전류방향과 같게 되고, 자기장을 걸게 되면 자화가 Y방향으로 점점 정렬해가므로, 전류 방향과 수직이 되어 저항이 줄어든다). 실제로 측정해보니 그렇게 나왔다.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좀 더 확인을 해보기로 했다.


그림 3. NiFe에서 흔히 보이는 이방성자기저항 (Anisotropic Magnetoresistance)

일반적인 측정의 기본은 “저항을 측정할 때는 전류를 되도록 작게 흘린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전류를 많이 흘리면 온도가 올라가서 원하는 현상과 더불어 온도에 따른 현상이 에러로 들어가버리게 때문이다. 나는 이런 원칙을 무시했다. 내가 체크하고자 한 것은 “전류를 얼만큼 흘리면 이 샘플의 온도가 올라가서 타버릴까?” 였다. 왜냐하면, 일단 이런 기준을 알고 있어야 과전류를 흘리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심스럽게 전류를 차근차근 올렸다. 일반적으로 온도가 올라가면 저항이 증가하므로, 내가 전류를 증가시키면 샘플의 저항이 올라간다. 그러다가 탈 때쯤 되면 저항이 급격히 증가할 테다. 그걸 일단 확인하고 그 이하의 전류에서만 실험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


AMR이 이상해졌다.


그림 4. Pt/NiFe에서 전류를 증가시켰을 때의 저항 변화

전류를 점점 증가시켰더니 그림 4와 같이 AMR이 비대칭적으로 바뀌었다. 전류 방향을 바꿨더니,비대칭의 방향도 바뀌었다. 조금 이상했는데, 이내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라고 생각했었다…). Pt이 스핀홀 현상이 있으니 Pt으로부터 NiFe에 스핀이 주입될 것이고, 전류 방향을 바꾸면 NiFe에 주입되는 스핀 방향이 반대가 될 테니, 저항이 비대칭이 될 수 있겠다… 즉, Pt에서 들어오는 스핀 방향이 NiFe의 자화 방향과 평행할 때와 반대일 때 저항이 달라질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DW 실험을 시작했다. 내가 궁금했던 것은 “스핀홀 효과에 의해서 DW depinning이 어떻게 될까?” 였으니까. 그리고 아래 그림5와 같은 DW depinning 결과를 얻었다. 특정 자기장, 전류방향에서 DW depinning이 잘되는 현상을 발견한 것이다. Pt을 Ta로 바꾸면 그 방향이 바뀌고, Cu로 바뀌면 이런 현상이 사라진다 (Cu는 스핀홀 효과가 아주 작다). 전류 방향, 자기장 방향, DW depinning방향, DW polarity 방향 등을 모두 바꾸어서 map을 그렸고, 정말인지 확인하기 위해 이런 map을 수도 없이 그렸다 (엄청 열심히 측정했다는 거다), 그 결과는 일관되게 “DW depinning이 스핀홀 효과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가르키고 있었다. 이게 바로 내 7년 여정의 시작이었다.


그림 5. 스핀홀 효과에 의한 DW depinning. 왼쪽:Pt/NiFe, 가운데: Ta/NiFe, 오른쪽”Cu/NiFe

내가 발견한 것은 두 가지였다. 첫째, 스핀홀 효과 때문에 AMR이 비대칭적으로 바뀐다 (그림 4). 둘 째, DW depinning이 스핀홀 효과의 영향을 받는다 (그림 5). “이 정도면 nature 자매지 두 편 정도는 나가겠지?” 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에는 다들 그 정도 수준이었다. 그런데 나의 두 가지 발견 중 첫 번째 발견, 즉 AMR의 비대칭성을 출간하는데 7년이 걸려서 오늘 드디어 억셉트 메일을 받았고, DW실험 결과는 아직도 출간을 못하고 있다. 어떤 논문은 실험을 한번 하고 바로 출간이 되기도 하지만, 어떤 논문은 시간이 흘러가도 출간이 안 되는 그런 논문이 있다.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야구를 봐라. 잘 맞아서 무조건 안타라고 생각했지만, 야수 정면으로 향해서 아웃이 되는 경우도 있고, 빗맞아서 아웃이라고 생각했지만, 야수 사이에 떨어져서 안타가 되는 경우도 있다. 세상일이 그렇다. 그래서 내가 아련함을 느끼는 것이고, 그래서 그 이야기를 하고자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실험 결과를 얻으면 일단 설명을 해야 하고, 그러려면 이론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내가 이론을 못하니까). 내 옆에는 두 명의 슈퍼히어로 이론 선생님이 계시니, 일단 그 분들께 결과를 보냈다.


“이경진 교수님, 이현우 교수님, 제가 이런 결과를 얻었습니다. 스핀홀 효과를 생각하면 당연할 것 같은 결과인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데이터를 보면 바로 그 물리적 의미를 파악하시는 이경진 교수님께서 바로 답장을 주셨다.


“AMR 비대칭 결과가 이상합니다. 여기에 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일이 시작된 것이다.


스핀홀 효과는 맞다. 왜냐하면, Pt을 Ta로 바꾸면 비대칭의 부호가 바뀌고, Cu로 바꾸면 이런 현상이 안나타나니까. 그리고 명확하게 NiFe에 들어오는 스핀모멘트와 NiFe의 자화가 반대방향일 때 저항이 커진다는 것. 즉, 비자성/자성 구조를 만들고 전류를 흘렸을 때, 스핀이 비자성층에서 자성층으로 주입되고, 그 스핀 방향에 따라서 저항 차이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근데 문제는… 스핀홀 효과로 스핀이 NiFe에 주입되면 “도대체 왜 저항이 바뀌는가” 이다. 이런걸 하려면 일단 가설을 세워야 한다. 우리가 (정확히는 이경진, 이현우 교수님께서) 세운 가설은 두 가지였다.


1. 반대방향 스핀이 주입되면 스핀토크 현상에 의해서 NiFe의 자화가 요동을 일으키고 따라서 저항이 증가하게 된다 (정확한 용어로 spin torque에 의해서 magnetization excitation이 일어나면 저항이 바뀐다는 것이다)
2. NiFe의 자화 방향과 Pt에서 주입되는 스핀의 방향이 반대일 때 저항이 증가한다는 것은 마치 GMR현상과 같이 이해될 수 있다 (정확한 용어로 spin dependent scattering으로 인해서 저항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설을 세웠으면 확인을 해야 한다. 첫 번째 가설은 simulation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왜냐하면, spin torque에 의한 magnetization excitation은 이미 잘 개발되어 있고, 최고 전문가가 바로 이경진 교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 결과 첫 번째는 원인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즉, spin torque는 그렇게 큰 저항변화를 만들 수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두 번째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서 온도를 바꾸어가면서 측정을 했다. 일반적으로 GMR과 같은 현상은 저온에서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실험해본 결과, 저온에서 비대칭적인 저항변화가 감소했다. 그러니 두 번째 가설도 틀렸다. 그럼 도대체 뭔가?


사실 나는 AMR의 변화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DW 실험이 목적이었으니까. 그래서 추가적으로 DW실험을 열심히 했다 (물론 지금까지 출간을 못하고 있지만 ㅎㅎ 이유가 궁금하면 나에게 오라). 이론은 내 전문이 아니니, 나는 실험을 추가적으로 열심히 했다. 온도 의존성, 자기장 의존성, 전류의존성, 시간 의존성, 물질 의존성, 두께 의존성, 등 할 수 있는 모든 실험은 다 했다. 그게 문제 였지만…


사실 이론가와 실험가 사이에는 약간의 생각의 차이가 있다. 이론가는 실험가에게 “실험을 조금만 더 하세요. 그럼 설명 가능한 이론의 개수가 줄어들고, 결국 정확한 이론으로 수렴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라고 이야기하고, 실험가는 이론가에게 “내 실험결과를 설명할 수 있는 이론 한가지만 이야기 해주세요. 내가 실험을 더 하면, 그 모든 실험 결과를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이론은 없을 테니까요” 라고 이야기한다. 바로 내가 두 번째 상황이었다. 실험을 많이 했지만, 그 많은 실험 결과를 완벽히 설명할 유일한 이론이 없었다. 어떤 이론은 상온에서 결과를 설명하지만 저온에서의 결과를 설명하지 못하고, 어떤 이론은 전류 의존성은 설명하지만 자기장 의존성은 설명하지 못하는 식이었다. 실험을 하나만 했다면, 그걸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은 많았겠지만…


어쨌든 시간은 흘러가서 2014년 경이 되었고… 나의 히어로 이경진 교수님께 연락이 왔다.


“지금 결과가 아주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듯 합니다. 기존 spin torque이론에서 무시했던 그 어떤 것이 나타나고 있는 듯 합니다.”


곧 이현우 교수님께서 연락하셨다.


“이 결과는 기존 spin torque이론을 넘어섭니다. spin torque에서는 무시했던 energy transfer를 고려하면 지금 결과가 설명이 됩니다”.


엥? Spin torque가 어떤 이론인가? 당대에 보고되고 있는 전류에 의한 자화 변화… 그 모든 현상을 지배하고 있는 그 이론 아닌가? 근데 그걸 넘어선다고? 나는 영문도 모르고, 놀라운 발견을 한 사람이 되는 듯 했다.


자, 그럼 한번 설명을 해 보자. Energy transfer가 도대체 어떤 것인지? 그것이 spin torque와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인지…


스핀토크라는 것은 전자 스핀이 자성층을 지나갈 때 토크를 전해준다는 것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아래 그림 6처럼 기울어진 spin 1 ($\vec{\sigma}$) 이 세워진 spin 2 ($\vec{S}$) 를 지나갈 때, spin 1은 서고, spin 2는 반대로 기우는 현상을 말한다. 이런 현상이 왜 일어나냐 하면 두 개의 스핀이 각운동량을 교환하기 때문이다 (전체 각운동량은 보존되면서, 주고 받을 수 있으니까). 이 것을 식으로 나타내면 torque=$\vec{S} \times \vec{\sigma} \times \vec{S}$이 된다.


그림 6. 스핀토크 현상의 개략도

스핀토크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고, 일단 위 식을 자세히 보자. 방향을 보면 이것은 spin의 transverse성분에 해당한다. 즉, 현재의 스핀토크 이론은 spin 의 transverse성분의 교환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그렇다면 longitudinal 성분은? 그건 주고 받지 않나? 이것이 바로 energy transfer의 핵심이다. 기존 스핀 토크 이론에서는 이 longitudinal 성분을 주고 받는 것을 무시했었다. 그걸 무시해도 많은 현상이 설명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걸 무시하면 안된다는 증거를 드디어 내가 찾아낸 것이다.


자, 그럼 energy transfer를 고려하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보자. 일단 스핀토크의 경우 두 스핀이 수직한 경우 그 효과가 가장 크지만, energy transfer의 경우 두 스핀이 평행/반평행 한 경우가 효과가 가장 크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두 스핀이 반평행한 경우 longitudinal 성분이 직접적으로 교환될 수 있다. 우리는 이런 것을 spin-flip이라고 부른다. 다시 말하면, spin-up에서 spin down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림 7). 이런 현상을 지배하는 것은 교환상호작용 (exchange interaction)인데, 식으로 쓰면 $ \vec{\sigma} \cdot \vec{S} = \sigma_z S_z + \frac{1}{2} \left( \sigma_{+} S_{-} + \sigma_{-} S_{+} \right) $이 된다.


그림 7. Spin-flip 현상의 개략도

자성 물질 내부에서 spin-flip이 일어난다고 하는 것은, majority band에서 minority band로 전자가 이동한다는 것이고, 이러한 프로세스에는 반드시 에너지와 운동량보존, 그리고 각운동량 보존이 수반되어야 한다. 기존에 보고된 문헌값을 이용하면, 이 때 수반되는 운동량 변화량은 $ 10^{-9} m^{-1} $정도 된다. 당구공이 부딪히면 운동량을 교환하듯이, 두 스핀이 상호작용해서 운동량을 교환하는데, 그 크기가 $ 10^{-9} m^{-1} $정도 된다는 것이다.

현재 상황을 조금 더 자세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데, 아래 그림 8과 같이 모든 스핀이 정렬되어 있는 자성체에 스핀을 주입시키고, 그 스핀이 spin-flip을 일으켜서 자성체 내부의 스핀 하나를 뒤집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자성체 내부에서는 같은 에너지라면, 스핀 하나가 돌아가는 대신에 전체 스핀들이 조금씩 기울어지는 것을 선호하게 된다 (스핀들이 손을 잡고, 하나만 돌아가지 않도록 막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편하겠다).


그림 8. Spin-flip 현상에 의한 마그논 생성 메커니즘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spin-flip 현상으로 스핀 하나만 반대방향으로 돌릴 수도 있는데, 왜 시스템은 “하나만 반대로 돌리는 것” 보다 “여러 스핀이 조금씩 기울어지는 것”을 선호하는가?


그건 바로 엔트로피 때문이다.


물리학에서 시스템을 기술할 때 자유에너지(free energy)라는 것으로 기술한다. 모든 계는 자유에너지가 최소가 되는 방향으로 변화해 간다. 일반적으로 어떤 계의 자유에너지 는 다음과 같이 기술된다.


$$ F = E - TS $$

여기서, E는 에너지, T는 온도, S가 바로 엔트로피이다. 이 식의 뜻은, 유한한 온도($T \neq 0K$)에서 같은 에너지라면 엔트로피가 높은 방향을 선호한다라는 것이다. 자, 그럼 엔트로피는 도대체 무엇인가? 교과서에 나오는 표현을 빌리자면, 그것은 ‘무질서도’이고, 통계역학적으로 표현하면, ‘확률적으로 더 선호하는 상태’가 되고, 좀 더 나아가면, ‘자연이 흘러가는 방향’이 된다. 이러한 정의를 따르자면, “여러 스핀이 조금씩 기울어지는” 이유는 그게 더 무질서하기 때문이고, 그렇게 존재할 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고, 자연이 원래 그렇기 때문이다.

이렇게 기울어진 스핀들은 마치 파동과 같은 형태를 띤다. 이것을 마그논(magnon)이라 부른다. 위 논의에 따르면 spin-flip에 에 의해서 전자가 전해주는 운동량은 $10^{-9} m^{-1}$이고, 이 운동량이 마그논을 생성하기 때문에, 마그논의 운동량 역시 $10^{-9} m^{-1}$가 될 것이다. 그럼 magnon의 분산관계(dispersion relation)에 의하면 magnon이 가지는 에너지는 수 meV가 되게 된다. 이게 바로 energy transfer의 핵심이다.

정리하자면, AMR에서 비대칭성이 나타나는 이유는 “비자성금속에서 스핀홀 효과에 의해서 자성층으로 스핀이 주입되고, 주입된 스핀은 Spin-flip을 일으켜서 magnon을 형성한다. 형성된 magnon은 수 meV의 에너지를 가지고, 이러한 magnon이 electron-magnon interaction에 의해서 저항을 증가시킨다”라는 것이다. 이 결과가 중요한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


1. 수 meV 라는 것은 THz영역에 해당한다. 즉, 생성되는 magnon은 THz이다.
2. 기존의 스핀토크 이론에서는 오직 transverse 성분만 예측했었고, 그 때 나오는 magnetization dynamics는 모두 GHz영역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처음으로 longitudinal 성분에 의한 energy transfer를 심각하게 고려했고, 그 결과 THz가 나온다는 것을 알았다.
3. THz라는 것이 만들기도 측정하기도 어려운데, 우리는 단순히 전류를 흘림으로써, THz 영역의 magnon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정도이다. 기존에 사람들이 이런 현상을 찾아내지 못한 이유는, 모두 GHz만 측정했고, 그것이 스핀토크 이론(transverse성분 교환)과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우리는 드디어 우리 결과를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을 찾았고,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그게 아마 2015년 어느 즈음이었다. 그러던 중…


Nature physics논문에 우리 결과와 완전히 동일한 결과가 실렸다 [참고문헌 4]. 같은 시료에서 같은 실험을 해서 같은 결과를 얻었다. 차이점은 그들은 상온에서만 측정했고 (내가 3년전에 측정했던…), 그래서 그 원인이 GMR과 같은 효과라고 단정한 것이다. 마음이 급해졌다. 나는 저들의 해석이 틀렸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권위있는 저널에 출간되어버렸다. 어떻게든 이걸 해결해야 한다.


우리는 논문을 Arxiv에 올리고 바로 Nature Nanotechnology에 투고했다. 심사 결과는 reject. 이유는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라는 것이었다. THz 영역의 magnon이야기를 하지만, 실제 측정한 것은 저항변화일 뿐, THz를 직접 측정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THz magnon을 직접 측정하기로 하고, THz측정이 가능한 싱가폴 대학의 양현수 교수님과 공동연구를 시작했다. 1년이 넘게 걸렸지만, 결국은 실패.


그러던 와중에 그들의 Nature Physics논문은 새로운 발견으로 굳어가고, 수 많은 후속논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중에는, 저항 변화의 원인이 magnon이라는 논문도 존재했다 [참고논문 5]. 우리 논문의 가치는 점점 떨어져 갔다. 우리는 할 수 없이 논문을 PRL에 보냈으나, 안타깝게도 Nature Nanotechnology때와 같은 reviewer를 만나서 reject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APEX에 논문을 제출한 것이다. 다행히도, APEX에서는 논문을 수락해 주었다. 그게 바로 오늘이다.


7년이 걸렸다. 실험을 하고 논문이 수락되기까지. 그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참 많은 일이 일어났다. 스핀홀 현상에 대해서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그 때였는데… 이제는 누구나 당연하게 이해하는 현상이 되었다. 불완전해 보이던 스핀토크 이론은 스핀궤도토크, 오비탈 토크로 변신해가고 있는 중이다. 그 뿐인가? 이제 사람들은 자성체도 기존의 강자성체에서 준강자성체, 반강자성체로 확장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학문이란 늘 그렇듯, 그렇게 발전해 가고 있다. 그렇다고 내 7년이 전혀 의미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당대 최고의 이론가와 서신을 주고받으며 엄청나게 많은 공부를 했다. 실험을 진행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배웠고, 논문을 쓰는 전략에 대해서도 배웠다. 정말 많이 배웠다. 그냥 대충 논문을 쓰고 지나가 버렸으면 절대로 얻을 수 없었던 그런 것들을 배웠다.


그래. 그렇게 배웠으니, 그걸로 된 거다.


1. I. M. Miron, et al., Nature 476, 189 (2011)

2. L. Liu, et al., Science 336, 555 (2012)

3. P. P. Haazen, et al., Nat. Mater. 12, 299 (2013)

4. Can Onur Avci, et al., Nat. Phys. 11, 570 (2015)

5. K. Yasuda, et al., Phys. Rev. Lett. 117, 127202 (2016)


저자 김갑진
E-mail : kabjin@kaist.ac.kr


To cite this article:
Kab-Jin Kim et al 2019 Appl. Phys. Express 12 063001
DOI:
https://doi.org/10.7567/1882-0786/ab1b54